[영토분쟁] 간도를 우리삶의 터전으로 삶을 것인가!!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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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12-30 23:1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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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영토분쟁] 간도를 우리삶의 터전으로 삶을 것인가!!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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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27년(인조5년) 청은 조선과 국경을 확정하는 ‘강도회맹 당시 어느 선을 국경으로 삼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시기에 국경 일부를 그린 지도가 규장각에 있는 ‘천하지도조선총도오라지방도(천하지도조선총도오라지방도)’ 이다.
특히 1860년…(To be continued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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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. 그 후에도 조선인은 계속 봉금(봉금)을 무시하고 간도에 이주하여 개척하였으며, 많지 않은 수의 한인(한인)도 이 지방에 이주하여 서로 섞여 살게 되었다. 여기서는 압록강 북쪽으로 성(성)과 책(책)을 쌓아 간도가 우리 땅임을 표시하고 있긴 하나 조선만의 주관적인 입장이 담긴 지도라는 점에서 지도가 그 당시 청의 입장도 대변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은 확신할 수 없다. 어쨌든 청나라가 봉금정책을 폈던 그 당시에도 조선이 간도는 자국의 영토라고 인식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
’을 맺는다. 그 조약을 맺은 뒤로도 조선인들의 이주와 개간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자 청과 조선은 오늘날 까지도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해 논란이 계속 되고 있고 china(중국) 과 한국의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인, 뒤에서 자세하게 다룰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데 그것이 조선 후기 숙종 38년 1712년의 일이다.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