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인문] 장보고(張保皐)가 세운 적산촌 법화원(法華院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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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9-21 03:5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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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산포(赤山浦)에는 신라방이란ㄴ 이름은 쓰지 않았으나 적산이 위치한 조건과 이웃 거류민을 연결해서 보면 여기에도 집단 거류지인 방(坊)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Cause 은 법화원(法華院)에 모이는 거류민의 총수가 200~250명이라고 하였다. 이들은 이웃의 적산포에 사는 사람만이 아니고 한나절 거리에 있는 주변 사람까지 포함한 숫자일 것이다.레포트/인문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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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문] 장보고(張保皐)가 세운 적산촌 법화원(法華院)
설명
장보고(張保皐)가 세운 적산촌 법화원(法華院)
이촌(里村)의 신라방
9세기 日本(일본)의 승려 Cause (園仁)이 신라 사람의 도움을 받아 中國에 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, 도착 후에 장안으로 들어갈 때 호조(護照: 여행허가서)를 발급받는 일도 재당(在唐) 신라인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았음은 잘 알려진 바이다.
당시 신라인의 집단 거류지로는 초주(楚州)의 신라방(新羅坊)과 연수(蓮水)의 신라방, 그리고 적산(赤山)의 신라원(新羅院)이 있었다.
②『정자통(正字通)』에는 상인들이 교역을 하는 장소로 나와 있다
③『구당서(舊唐書)』백관지(百官志)에는 시방(市坊)을 두어 무역을 기록하였던 곳이라 하고 있다
④ 신라인의 장(莊)이라는 것,
⑤ 조계(租界)와 같은 것이라는 것 등의 해석으로 다양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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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라원이라는 이름은 법화원만이 아니…(省略)


